[이인식의 멋진과학] 몸으로도 생각한다

조선일보 | 입력 2011.03.27 00:55 | 수정 2011.03.28 11:07

 
비누로 손을 씻으면 마음도 깨끗해지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종교 의식에서 물로 세례를 하는 이유는 죄악이 씻겨내려 간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전과자가 범죄의 굴레에서 벗어나면 '손을 씻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물리적 상태를 나타내는 낱말로 추상적 개념을 묘사하는 표현은 한둘이 아니다. 존경하는 인물은 '올려다' 본다, 사랑하는 사람은 '따뜻하게' 느껴진다, 과거는 '되돌아본다'고 표현한다. 이런 사례는 마음이 추상적 개념을 이해할 때 몸의 도움을 받는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몸의 감각이나 움직임이 마음의 인지 기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하는 '몸에 매인 인지(embodied cognition)' 이론이 등장했다.

↑ [조선일보]

1960년대 이후 대부분의 인지과학자들은 정보처리 측면에서 뇌와 몸의 역할이 다르다고 전제했다. 몸은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 세계의 정보를 획득하여 뇌로 전달하고, 뇌의 지시에 따라 운동기관을 통해 행동으로 옮긴다. 컴퓨터로 치면 몸은 입출력 장치에 불과하며 뇌만이 정보를 처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일부 과학자들은 몸을 뇌의 주변장치로 간주하는 견해에 도전했다. 그들은 몸의 감각이나 행동이 뇌의 정보처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몸을 단순한 정보 입출력 장치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과학적 증거가 없어 한때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연구결과가 잇따라 발표되었다. 가령 뜨거운 커피 잔을 들고 있거나 실내온도가 알맞은 방 안에 있으면 낯선 사람을 대하는 사람의 기분도 누그러졌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 협상을 하면 마음이 부드러운 남자도 상대를 심하게 다그쳤다. 무거운 배낭을 등에 지고 산에 오르면 비탈이 더 가파르게 느껴졌다. 목이 마르면 물이 든 병이 더욱 가깝게 있는 듯한 착각을 했다. 이런 실험 결과는 몸의 순간적인 느낌이나 사소한 움직임, 예컨대 부드러운 물건을 접촉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사회적 판단이나 문제 해결 능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요컨대 인지와는 무관해 보이는 깨끗함, 따뜻함, 딱딱함과 같은 감각도 인지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진 셈이다.

2008년 미국 에머리대 심리학자 로렌스 바살로우는 '연간 심리학평론(Annual Review of Psychology)'에 실린 논문에서 "뇌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몸의 경험을 모의(시뮬레이션)하기 때문에" 인지가 몸에 매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만일 몸에 매인 인지 이론에 동의한다면 실생활에 활용할 만하다. 격월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마인드' 1·2월호에 따르면 환경에 적절한 변화를 가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도 있다. 가령 상거래를 할 때 상대에게 찬 음료보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게 하면 더 따뜻한 느낌을 갖게 될 터이므로 계약을 성사시킬 가능성이 커진다. 몸에 매인 인지 이론은 교육 현장에서도 크게 활용될 전망이다. 초등학교 어린이는 독서를 하면서 책에 묘사된 행동을 흉내 내면 이해력이 증진되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몸짓을 흉내 내면 어린이가 산수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선생님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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